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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는 구글 검색이 통하지 않는다

스물다섯 PM 일기

by Cool life good life 2025. 3. 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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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타키나발루에 여기 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 이곳이 고프다. 더 알고 싶고, 부족하다. 한 달도 모자랄 것 같다.

 

  이곳에 대해 검색하며 로컬 신문사 웹사이트, 환경보호단체 사이트를 들리고, 작은 비즈니스 관련해 조사한 영어 논문까지 번역해가며 읽었다.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는 등록되지 않은 작은 스몰 비즈니스가 많다는 사실부터, 해양업으로 종사해 먹고사는 가족들이 많고, 말레이인이 아닌 작은 부족에서 온 원주민 현지인과 외국인들로 이뤄진 섬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말레이시아 주 중에 가장 무슬림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어서 실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해양식물을 보호하는 단체를 찾아내고 싶었다. 해양 스포츠만 찾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바다를 보호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액티비티 등을 다섯 곳 추려내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찾는 정보가 아닌 건지 아니면 내 검색 실력이 퇴화된 건지, 두 시간 후 포기하고야 말았다.

 

 

일단 궁금했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

 

  여행하며 일하는 나에게 인터넷이 생명이기 때문에, 섬 코타키나발루에 오기 전 60링깃(18000원)을 주고 무제한 인터넷 유심카드를 샀다. 섬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필요한 건 다 사가자 하는 마음으로 저렴한 쇼핑을 했다. 2000원 은색 귀걸이, 슬리퍼, 비행기에서 먹을 로컬 팬케이크. 다 합해서 만원도 안 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섬까지 비행기 타고 2시간 반이 걸린다. 코타키나발루가 지도상 어디 위치해있는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몰랐다.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공항에서 Grab 택시를 타고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했다.

 

   코타키나발루는 쿠알라룸푸르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안했다. 번잡하고 붐비며 각박함 가득한 도시보다 아름다운 바다와 선분홍색 노을이 매일 보이는 이곳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한국의 고향 주문진 생각이 났다. 

 

  수산물 시장, 바다 냄새, 부둣가의 선박, 바닥에 앉아 체스를 두는 아저씨들, 카페에서 조식을 즐기는 외국인 가족, 보드 타는 소년, 해산물 뽑아내는 아주머니, 수상스키를 즐기는 보트들 등. 여유가 물씬 느껴지는 이곳은 한국인 감성이 가득한 예쁜 카페들도 많았다.

 

 

"구글? 너무 정보가 적어" - 구글 신봉자, 그 말 듣고 충격받다

 

  35만 원이라는 가격에 PADI 오픈워터 스쿠바 다이빙 자격증 코스도 밟았다. 보트와 장비 대여 가격부터 점심까지, 아름다운 가야 섬 근처에서 바다거북이, 아기 상어와 헤엄도 쳤다.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장 좋았던 건 같이 코스를 밟으며 만난 사람들이었다.

 

  중국계 말레이 친구 두 명과 코스를 밟으며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 해양보호단체를 못 찾아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놀랍게도 친구들은 UN이 주도하는 '말레이시아 해양식물 보호 관련 앰베서더'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 스쿠바 다이빙 코스를 프로그램의 일부로 재정지원받아 밟고 있었으며, 섬의 다양한 보호단체들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다 이야기해주기가 벅차다는 말을 하더라. 충격을 받아서 "왜 구글에서는 그런 곳들에 대한 정보가 없지?" 물어봤더니 "웹사이트가 아예 없는 단체들도 있어. 그냥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입소문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후 조금 더 얘기하다가 카페와 식당들 중에서도 구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구글맵으로 찾던 리스트가 전부가 아니었던 거다. 건물의 2층 곳곳에 숨겨진 간판 없지만 현지인에게 유명한 카페들 이름을 간추린 리스트를 친구들에게 받았다.

 

  카페를 구글에 검색하니 결과가 나오긴 했다만 사진이 등록되어 있지 않아 믿을 만한 곳이 맞는가 걱정했다. 친구들이 걱정하지 말라며 얘기했다. "여기선 구글을 접는 게 좋아. 정보는 인터넷보다 현지인이 가장 잘 알아." 그 말이 왜 그리 내게 충격이었을까 모르겠다.

 

 

호스텔에서 알게 된 진실

 

  키나발루 산은 등산하는데 이틀이 걸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산이다. 외국인은 평균 60만 원 정도를 내고 전문가 가이드와 등산을 한다. 심지어 현지인도 최소 40만 원은 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산을 오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통장 잔고를 보고 있는데 그때 호스텔 주인과 마침 아침을 먹고 있었다.

 

  호스텔 주인은 묵묵하고 조용한 '얀'이라는 아저씨다. 평소에 말수가 적으시다가 나눠드린 카야잼이 맛있었는지 식빵에 발라드시며 키나발루 산에 오르는데 그리 많은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아는 친구들은 3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다녀왔다는 것이다.

 

  스쿠바 다이빙 코스를 밟으며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고개를 저으며 20만 원도 안 되고, 가장 싸게는 10만 원밖에 안 든다고 얘기하더라. 그럴 리가 없다, '구글 검색에서 모든 웹사이트로 가격을 비교해봤는데 그렇게 싸게 안 나왔다"는 나의 말에 "은빈, 구글보다 우리가 여길 잘 알아. 구글은 사람들이 맞는 줄 알고 올린 편협한 정보로 가득한 걸"이란 말을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저 말이 정확하진 않더라도 코타키나발루 여행에선 구글이 통하지 않겠구나. 

 

 

 

쿠알라룸푸르에선 구글만 이용했었는데

 

  IT 업계에 종사하면 대부분 구글 신봉자가 된다. 망고 자르는 방법부터 시작해 해외 세탁기 돌리는 방법까지 모든 정보를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며 태국을 여행한 나로서는 말레이시아 여행이 참 당황스러웠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고 현지 문화를 경험하며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외국인들이 흔히 가지 않는 카페와 식당을 태국에서 찾아다닌 것도 같은 이유였다. 흔히 검색하면 나오는 '반드시 가야 할 여행지 10곳' 리스트 따위 보지 않았다. 구글맵으로 장소를 찾을 때 한국인 리뷰가 너무 많은 곳은 가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의 Petaling street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근처에 머물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현지인과 교류하는 게 참 힘들었다. 특히 장사하는 분들이 많은 차이나타운에서 내게 물건을 팔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아 현지인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날 쳐다보는 남성들, 오래 앉아 작업할 수 있는 카페가 많이 없었고, 음식과 음료에 설탕이 많아 입에 맞지 않고, 시간이 남아서 들린 관광명소들은 정말 사진 그대로의 건물 외에 볼 게 없어 매일이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한국외대에서 오래 알고 지낸 말레이시아 친구의 가이드와, 여성 호스텔에 머물며 만난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 덕분에 같이 도시를 탐색하며 '여기는 재미없다, 여기가 좀 볼 게 있다' 대화 정도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검색하며 나오는 곳 들리며 도시를 알아갔다. 

  

  구글맵 의존하다가 앱을 끄고 차이나타운 곳곳을 돌아다니면 숨겨진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그것도 거리를 탐색하다가 들려보며 알게 된 나만의 비밀 아지트, 한국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을 공략해 찾아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에 없는 틈새를 찾아냈을 때 그 희열이란 여행하는 사람들만 알 거다. 

 


 

  도시는 정보가 넘쳐나지만 대화가 적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보단 검색에 의존하고 검색은 알고리즘에 따라 정보를 펼쳐놓는다. 방대한 정보량이 나온다고 하지만, 오히려 얻어낸 정보가 좁고 제한된 수준으로 제공되면 편협한 판단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글에서 찾은 맛집보다 현지인의 추천으로 찾은 맛집이 더 맛났기 때문이다.

 

  코타키나발루는 입소문과 사람을 통해 얻는 정보가 더 귀한 곳이다. 사람이 검색을 이긴다. 그래서 더 많이 얻어가고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볼게 많다던 쿠알라룸푸르보다 7일이면 적당하다던 코나키나발루가 더 좋은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두 주를 여행하며, 검색이 사람을 이긴다는 생각에 인터넷에 크게 의존하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늦었지만 기억하려고 한다. 사람이 검색을 이기지는 못한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는 게 정답이 아닌 환경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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